이번에 적을 이탈리아 축구선수는 안드레아 피를로이다.
'패스 마스터'이자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로 불렸던 인물이다.
(내용 출처: 위키백과 영문판/나무위키)
1979년 5월 19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브레시아도 플레로시에서 태어났다.
선수시절 수비형 미드필더(딥라잉 플레이메이커)였다.
알다시피 뛰어난 킥력을 보유했다.
비록 스피드는 느린 편이었지만, 정확한 패스/킥력/슈팅과 준수한 발기술을 보유했다.
특히 전매특허인 무회전 프리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현역 시절 '졸린 베컴'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92년 브레시아 칼초(이탈리아) 유스팀에 입단했다.
이곳에서 1995년까지 뛰었고, 같은 해에 브레시아 성인팀으로 월반했다.
1995년 5월 21일 레지나와의 경기에서 세리에A 데뷔전을 치루었다.
이 기록은 브레시아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의 리그 출전이었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뛰었는데, 1994-95, 1997-98 시즌은 세리에 A였고,
1995-96,1996-97 시즌은 세리에 B에서 뛴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주전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이후 인테르에서도 주전을 잡지 못하며 2001년 복귀했다.
마침 선수생활 말년을 보내던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조를 만나게 되었다.
(바조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브레시아 칼초에서 뛰었다.)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피를로는 바조로부터 프리킥이나 발기술 등을 배웠다고 한다.
이후 감독이었던 카를로 마초네는 피를로에게 처음으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롤을 부여했다.
피를로의 진가는 여기서부터 발휘되었다고 보면 된다.
Brescia[2]
수상 기록이다.
Brescia | 1994–95 | Serie A | 1 | 0 | 0 | 0 | — | — | 1 | 0 | ||
1995–96 | Serie B | 0 | 0 | 0 | 0 | — | — | 0 | 0 | |||
1996–97 | Serie B | 17 | 2 | 1 | 0 | — | — | 18 | 2 | |||
1997–98 | Serie A | 29 | 4 | 1 | 0 | — | — | 30 | 4 | |||
2000–01[nb 10] | Serie A | 10 | 0 | 0 | 0 | — | — | 10 | 0 |
브레시아 시절 기록이다.
브레시아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던 피를로는 1998년 인터 밀란(이탈리아)로 이적했다.
1998-2001 동안 뛰었지만, 임대 시절을 제외하면 2시즌이 전부였다.
(1999-00 시즌 레기나에서 임대로 뛰었다.
당시 인테르 팀동료였던 로베르토 바로니오와 모하메드 칼론과 함께 임대를 갔다.)
아무튼 인테르 시절은 피를로에게는 좋은 기억은 아닐 것이다.
Inter Milan | 1998–99 | Serie A | 18 | 0 | 7 | 0 | 7[a] | 0 | — | 32 | 0 | |
2000–01 | Serie A | 4 | 0 | 1 | 0 | 3[b] | 0 | — | 8 | 0 | ||
Reggina (loan) | 1999–2000 | Serie A | 28 | 6 | 2 | 0 | — | — | 30 | 6 |
인테르 시절 기록이다.
그러던 2001년 AC밀란(이탈리아)로 이적했다.
당시 약 1700만 유로(약 226억)의 이적료를 기록했고, 2001년 6월 30일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안드레아 피를로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당시 AC밀란은 '밀란 제너레이션 2기'를 준비중이었다.
2001-02 시즌 피오렌티나(당시 파산)의 후이 코스타와 유벤투스(리피의 개혁)의 필리포 인자기를
영입했다.
피를로 또한 인테르에서 시원치 않았지만, 2001년 밀란의 일원이 되었다.
이 외에도 안드리 셰브첸코, 카카 칼라제, 클라렌스 셰도르프, 다리오 시미치, 욘 달 토마손,
알레산드로 네스타, 히바우두 등을 영입했고, 노장 파올로 말디니도 함께했다.
(카푸, 카카 등도 영입했다.)
당시 AC밀란의 감독이었던 카를로 안첼로티는 중앙 지향적인 4-4-2를 사용했다.(4-1-2-1-2)
말(디니)-네(스타)-스(탐)-카(푸)의 4백 앞에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피를로(혹은 암브로시니)를 세웠고,
가투소-셰도르프 3선과 공격형 미드필더에는 카카(후이 코스타)를 세웠다.
마지막으로 투톱(주로 셰브첸코-크레스포(인자기/토마손))을 세워 안정적인 플레이를 노렸다.
그렇게 완성된 밀란 제너레이션 2기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 Serie A: 2003–04, 2010–11
- Coppa Italia: 2002–03
- Supercoppa Italiana: 2004
- UEFA Champions League: 2002–03, 2006–07
- UEFA Super Cup: 2003, 2007
- FIFA Club World Cup: 2007
수상 기록이다.
- UEFA Super Cup Man of the Match: 2007[71]
- ESPN World Team of the Decade: 2009[321]
개인상 기록이다.
이 스쿼드에서 피를로는 경기 조율/정확한 패스와 킥력/위협적인 슈팅/데드볼 능력/탈압박 능력 등을
보이며 팀의 중추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2007-08 시즌부터 서서히 스쿼드의 노쇠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노인정'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
게다가 라이벌 인테르가 05/06 시즌부터 09/10 시즌까지 리그 5연패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피를로 본인 또한 기량 하락(특히 프리킥)을 보이며 팀의 부진에 일조했다.
결국 AC밀란은 세대교체의 명목으로 피를로를 놓아 주기로 했다.
AC Milan | 2001–02 | Serie A | 18 | 2 | 2 | 0 | 9[c] | 0 | — | 29 | 2 | |
2002–03 | Serie A | 27 | 9 | 2 | 0 | 13[a] | 0 | — | 42 | 9 | ||
2003–04 | Serie A | 32 | 6 | 0 | 0 | 10[d] | 1 | 2[e] | 1 | 44 | 8 | |
2004–05 | Serie A | 30 | 4 | 1 | 0 | 12[a] | 1 | 0 | 0 | 43 | 5 | |
2005–06 | Serie A | 33 | 4 | 4 | 0 | 12[a] | 1 | — | 49 | 5 | ||
2006–07 | Serie A | 34 | 2 | 4 | 0 | 14[a] | 1 | — | 52 | 3 | ||
2007–08 | Serie A | 33 | 3 | 1 | 0 | 9[f] | 2 | 2[g] | 0 | 45 | 5 | |
2008–09 | Serie A | 26 | 1 | 0 | 0 | 3[c] | 1 | — | 29 | 2 | ||
2009–10 | Serie A | 34 | 0 | 1 | 0 | 8[a] | 1 | — | 43 | 1 | ||
2010–11 | Serie A | 17 | 1 | 3 | 0 | 5[a] | 0 | — | 25 | 1 |
AC밀란 시절 기록이다.
그렇게 사실상 팽 당한(?) 피를로는 라이벌 중 하나인 유벤투스(이탈리아)로 이적했다.
계약기간은 3년이었다.
마침 2011-12 시즌부터 2019-20 시즌까지 리그 9연패를 하는 유벤투스의 시작점이었다.
안 그래도 플레이메이커가 필요했던 유벤투스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다.
(2011-12 시즌부터 2014-15 시즌까지 뛴 바 있다.)
당시 유벤투스는 3백을 주로 사용하는 팀이었다.
부폰-키엘리니-보누치-바르찰리로 이어지는, 흔히 말하는 'BBBC' 라인이 강력했다.
3-1-4-2 전술에서 피를로는 '1'의 역할을 수행했다.비록 나이가 들어 기동력이 떨어졌지만, 여전한 시야와 킥력, 프리킥 등이 인상적이었다.마르키시오-비달과 함께 'MVP' 미드필더진을 구축하였고, 4년 동안 세리에A를 지배했다.
수상 기록이다.
- Premio Bulgarelli Number 8: 2012[322]
- ESM Team of the Year: 2011–12[105]
- Pallone d'Argento: 2011–12[323]
- Pallone Azzurro: 2012[324]
- Guerin d'Oro: 2012[325]
- UEFA European Championship Teams of the Tournament: 2012[106]
- UEFA Team of the Year: 2012[106]
- 2011–12 Serie A Top Assist Provider[101]
- Serie A Team of the Year: 2011–12,[326] 2012–13,[122] 2013–14,[327][328] 2014–15[329]
- Serie A Midfielder of the Year: 2012[327]
- Serie A Footballer of the Year: 2012, 2013, 2014[327]
- Premio Nazionale Carriera Esemplare "Gaetano Scirea": 2013[330]
- FIFA Confederations Cup Team of the Tournament: 2013[209]
- FIFA Confederations Cup Castrol Index Top XI: 2013[331]
- UEFA Europa League Team of the Season: 2013–14[332]
- UEFA Champions League Team of the Season: 2014–15[136]
개인상 기록이다.
하지만 세월은 속일 수 없었는지 피를로 또한 노쇠화가 진행되었다.
수비적인 실수가 많아졌고, 킥력 또한 예전보다 부정확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적을 결심하게 되었다.
Juventus | 2011–12 | Serie A | 37 | 3 | 4 | 0 | — | — | 41 | 3 | ||
2012–13 | Serie A | 32 | 5 | 2 | 0 | 10[a] | 0 | 1[h] | 0 | 45 | 5 | |
2013–14 | Serie A | 30 | 4 | 1 | 0 | 13[i] | 2 | 1[h] | 0 | 45 | 6 | |
2014–15 | Serie A | 20 | 4 | 2 | 0 | 10[a] | 1 | 1[h] | 0 | 33 | 5 |
유벤투스 시절 기록이다.
많은 선수들이 그러하듯 피를로 또한 말년을 미국 MLS에서 보내기로 결심했다.
2015년 뉴욕 시티(미국)로 이적했고, 3년 간 뛰었다.
2015년 7월 26일 드디어 미국 MLS 데뷔전을 치루었다.
(5:3 승)
하지만 세월이 야속한지 팀에 큰 기여는 하지 못했고, 결국 2017년 12월 은퇴했다.
- New York City FC's Ride of Fame: September 2015[334]
- Globe Soccer Awards Player Career Award: 2015[335]
개인상 기록이다.
New York City FC | 2015 | Major League Soccer | 13 | 0 | 0 | 0 | — | — | 13 | 0 | ||
2016 | Major League Soccer | 32 | 1 | 0 | 0 | — | 1[j] | 0 | 33 | 1 | ||
2017 | Major League Soccer | 15 | 0 | 0 | 0 | — | 1[j] | 0 | 16 | 0 |
뉴욕 시티 시절 기록이다.
총 기록(-2017.12): 756경기 73골
이탈리아 대표팀에서도 활약했다.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이탈리아 최고의 미드필더'로 뽑히는 피를로이다.
(마르코 타르델리, 잔니 리베라 등과 함께 주로 언급된다.)
위에서 설명했던 정확한 킥력과 번뜩이는 천재성, 패스와 발기술 등이 탁월했다.
2000년 이탈리아 U21 대표팀 소속으로 유러피언 U21 챔피언십을 우승한 바 있다.
유로 2000과 2002 월드컵을 결장한 피를로는 2002년 월드컵 직후 대표팀에 처음 소집되었다.등번호는 21번을 달았고, 2015년까지 활약한 바 있다.(116경기 13골)
유로 2004에서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이탈리아 자체가 부진했고, 팀은 C조 3위로 탈락했다.
2006 월드컵에서는 중원의 에이스다운 활약을 보였다.E조 1차전 가나와의 경기에서 멋진 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하였다.(2:0 승)이후에도 멋진 패스와 킥력을 보인 바 있고, 4강 독일 전에서는 파비오 그로소의 골을 도왔다.(2:0 승, 그로소의 도리도리 세레모니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유로 2008과 2010 월드컵에서는 부진했다.
유로 2012에서 거짓말 같이 부활했다.
당시 소속팀 유벤투스의 수비진이 그대로 형성되었고, 피를로는 역시 3-1-4-2의 '1' 역할을 수행했다.
여전한 기량으로 중원을 지배했고, C조 1차전 스페인과의 경기는 21세기 최고의 경기로 언급된다.(가짜 공격수-스페인 vs 가짜 수비수-이탈리아의 대결로도 주목받았다.)이후 크로아티아 전에서 멋진 프리킥 골을 기록했고(1:1 무),
8강 잉글랜드와의 승부차기에서 멋진 파넨카킥을 기록했다.(0:0->pk 4:2 승)
4강에서도 나쁘지 않았지만, 결승전 스페인과의 리턴매치에서는 무릎을 꿇어야 했다.(0:4 패)
2013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2014 월드컵은 피를로의 마지막 국제대회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D조 우루과이/코스타리카/잉글랜드와 한 조에 속했다.
1차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환상적인 움직임(칸드레바의 마르키시오를 향해 준 패스를
캐치하는 척 잘 흘려 주었다.)을 보이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지만(2:1 승),
이후 코스타리카(0:1 패), 잉글랜드(0:1 패) 전에서는 부진했다.
이후 콘테의 유로 2016 이탈리아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하며 2017년 12월 은퇴했다.
주요 원인은 2018 월드컵 본선진출 실패인 듯하다.
(피를로가 없는 현재 월드컵을 못 나가는 것을 보면 그의 존재감이 컸던 것 같다.)
Italy[2]
- FIFA World Cup: 2006[319]
- UEFA European Under-21 Championship: 2000[106]
- Olympic Bronze Medal: 2004[106]
- UEFA European Championship runner-up: 2012[106]
- FIFA Confederations Cup third place: 2013[3]
수상 기록이다.
- UEFA European Under-21 Championship Golden Player: 2000[106]
- UEFA European Under-21 Championship Top Scorer: 2000[106]
- 2006 FIFA World Cup: All-star team[3]
- 2006 FIFA World Cup: Bronze Ball[3]
- 2006 FIFA World Cup: Top Assist Provider[320]
- 2006 FIFA World Cup Final: Man of the Match[3]
- FIFPro World XI: 2006[13]
개인상 기록이다.
Italy U15 | 3 | (0) |
Italy U16 | 6 | (2) |
Italy U17 | 4 | (0) |
Italy U18 | 18 | (7) |
Italy U21 | 37 | (15) |
Italy Olympic | 9 | (1) |
Italy | 116 | (13) |
이탈리아 대표팀 시절 기록이다.
2020-2021 동안 유벤투스의 감독직을 맡은 바 있다.
하지만 리그 우승 실패를 책임지고 1년만에 사임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한때 와인 사업을 했다.
나름 유명했는지 판매량이 많았다고 한다.
하이네켄 광고에도 출연한 바 있다.
2019년 1월 쯤이었다.
자신의 등번호였던 21번 룸번호가 깨알 재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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