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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탈리아

21세기 유럽 축구선수-1. 이탈리아-2. 파비오 칸나바로

오늘 소개할 21세기 이탈리아 선수는 파비오 칸나바로입니다.

1973년 9월 13일 태어났습니다.

이탈리아 나플레스 출신입니다.

(이탈리아어로는 "Napoli"입니다.)

선수시절 센터백이었습니다.

"공은 여기서 멈춘다"라는 말의 주인공입니다.

176cm의 작은 키지만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대인 마킹으로

상대 공격수들을 차단시켰습니다.

이탈리아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불립니다.

1988-92 동안 나폴리(이탈리아) 유스에서 뛴 바 있습니다.

초기에는 볼보이로써 당시 자신의 아이돌였던

"디에고 마라도나"나 "치로 페라라"의 플레이를 지켜보곤 했습니다.

이후 팀에 뒤늦게 합류했고, 자신의 우상인 마르코 타르델리인 만큼

미드필더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팀 유스 코치에 의해 센터백으로 전향했습니다.

센터백으로 훈련하며 엄청난 강도의 슬라이딩 태클을 보였습니다.

마라도나에게 엄청난 상처를 입힌 태클을 보였고, 

팀 동료들과 스태프들을 격분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오히려 이 잠재력이 있는 수비수를 두둔했고,

스스로 원하는 플레이를 하도록 장려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 말이 지금의 칸나바로를 만든 계기가 될 지도 모릅니다.

1992년 같은 나폴리에서 성인 팀 데뷔를 했습니다.

1993년 3월 7일 투린에서 유벤투스와의 세리에A에서

데뷔전(3:4 패)을 치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측력/태클/볼배급/공격전개 등의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1995년 1월 8일 산 시로에서 AC밀란 상대로 

첫 골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던 나폴리는 

칸나바로를 파르마에 팔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폴리(이탈리아) 기록: 1992-1995: 68경기 1골

1995년 파르마(이탈리아)로 이적했습니다.

위에서 말한 팀의 재정난이 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입니다.

재정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적한 파르마에서

칸나바로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곳에서 축구 친구인 잔루이지 부폰과 릴리앙 튀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3명의 조합은 당대 유럽에서 가장 타이트한 수비를 보였습니다.

1995-96 시즌 리그 6위와 UEFA컵 위너스컵 준결승에 오른 바 있습니다.

사실 이후의 기록은 잔루이지 부폰과 비슷하기에 링크만 올립니다.

ilt9525.tistory.com/13

 

21세기 유럽 축구선수-1. 이탈리아-1. 잔루이지 부폰

이번에 소개할 21세기 이탈리아 축구선수는 잔루이지 부폰입니다. 1978년 1월 28일 태어났습니다. 이탈리아 투스카니 주 카라라 출신입니다. 포지션은 골키퍼입니다. 놀랍게도 아직 은퇴하지 않은

ilt9525.tistory.com

2001-02 시즌에는 유벤투스를 꺾고 2번째 코파 이탈리아를 차지했습니다.

수상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1998-99 시즌: UEFA컵 우승, 코파 이탈리아 우승

2001-02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999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 우승

 

하지만 클럽에서의 개인상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2000년 5등급 기사 작위를 수상한 바 있습니다.

 

파르마(이탈리아) 기록: 1995-2002: 291경기 6골

2002년 인테르(이탈리아)로 이적했습니다.

2002 월드컵 직후였고, 2300만 유로(약 300억)의 이적료에

4년 계약이었습니다.

역시 직전 클럽인 파르마가 재정난에 시달렸던 때입니다.

2001-02 시즌 세리에A를 놓쳤고, 스타플레이어인 호나우두마저

팀을 떠나며 어려워진 인테르였습니다.

프란체스코 코코, 에르난 크레스포(파르마 시절 동료) 등과 함께

칸나바로는 팀의 리빌딩의 주역으로 떠올랐습니다.

첫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과 리그 준우승(우승은 유벤투스)을

기록하며 좋은 흐름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음 시즌인 2003-04 시즌은 달랐습니다.

큰 부상을 당했고, 팀은 리그 4위, 코파 이탈리아 4강(유벤투스에 승부차기 패),

UEFA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탈락 및 UEFA컵 강등을 기록했습니다.

파르마 시절과 비교하면 초라한 기록입니다.

원래 4년 계약이었지만, 2년만 뛰고 팀을 떠났습니다.

 

인테르(이탈리아) 기록: 2002-04: 74경기 3골

2004년 유벤투스(이탈리아)로 이적했습니다.

인테르 동료였던 파비안 카리니와 함께 이적했고,

각각 1000만 유로(약 134억)의 이적료를 기록했습니다.

릴리앙 튀랑, 잔루이지 부폰과 함께 파르마 트리오를 다시 이루었습니다.

세리에A 최고 클럽답게 선수진들이 화려했습니다.

위의 선수들 이외에도 잔루카 잠브로타, 잔루카 페소토, 알렉산드로 브린델리,

조나탄 즈비나, 페데리코 발자레티 등의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칸나바로는 "오스카 데 칼초"라는 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2004-05 시즌과 2005-06 시즌을 우승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인 

"칼치오 폴리"가 2006 월드컵 직후 터졌습니다.

당시 유벤투스의 2번의 우승 기록은 박탈되었고, 

당해 2시즌은 결국 인테르의 우승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결국 이 사태로 팀이 세리에B로 강등되자 이적을 결심했습니다.

그래도 2005-2006년 2연속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했고,

2006년 이탈리아 올해의 선수상과 세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이후 2009-10 시즌에 다시 돌아와서 1시즌을 뛰었습니다.

2006년 4등급 훈공장을 수여받았습니다.

2017년 유벤투스 역대 베스트11에 선정되었습니다.

 

유벤투스(이탈리아) 기록: 2004-06, 2009-10: 128경기 7골

2006년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로 이적했습니다.

칼치오폴리의 영향이었고, 700만 유로(약 93억)의 이적료를 기록했습니다.

직전 5번을 단 지네딘 지단(은퇴)의 뒤를 이었습니다.

3년 간 뛰었습니다.

당시 이적한 지 얼마 안 된 신성 세르히오 라모스와 함께 듀오를 이루었습니다.

역시 뛰어난 활약으로 리그 우승(2006-07, 2007-08)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서 그런 지 당시 신흥 공격수로 떠올랐던

리오넬 메시와 페르난도 토레스에 속수무책으로 뚫렸습니다.

그래도 2013년 4월 스페인의 신문지 "마르카"에서

칸나바로를 "레알 마드리드 최고의 외국인 수비수"로 임명한 바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기록: 2006-09: 118경기 1골

2010년 알-아흘리(UAE)로 이적했습니다.

말년을 보내기 위함이었고, 2010 월드컵 이후였습니다.

자유계약으로 이적했습니다.

2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리그 16경기 2골을 기록했습니다.

2011년 7월 심각한 무릎 부상 때문에 은퇴했습니다.

1년 뒤 실리구리(인도)에서 복귀했다고 합니다.

제이-제이 오코차, 에르난 크레스포, 로비 파울러 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리그는 열리지 못 하고 은퇴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알-아흘리(UAE) 기록: 2010-11: 16경기 2골

 

총 기록(-2011.7): 695경기 20골

이탈리아 대표로도 활약했습니다.

1997년부터 2010년까지 뛰었습니다.

이전에 1993-1996 동안 이탈리아 U21에서 뛴 바 있습니다.

2번의 U-21 챔피언십 우승(1994,1996)을 기록했습니다.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부폰이 176경기로 경신하기 전까지 최다출장자(136경기)였습니다.

역시 작은 키지만 뛰어난 스피드/반사신경/대인마킹/점프력으로 

상대 공격수들을 차단시켰습니다.

4번의 월드컵(1998,2002,2006,2010)과 2번의 유로(2000,2004)에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유로 2008은 부상으로 좌절되었습니다.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고, 5백의 오른쪽 센터백과 4백의 센터백을 겸했습니다.

파트너는 마르코 마테라치나 알렉산드로 네스타와 같은 키 큰 수비수를 두었습니다.

2006 월드컵을 우승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월드컵인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팀이 참패하며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유로 2000 준우승도 있긴 하지만 우승 기록은 2006 월드컵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개인상을 모두 대표팀에서 기록했습니다.

개인상 기록입니다.

 

이탈리아 대표팀 기록: 1997-2010: 136경기 0골

2006년 발롱도르를 수상한 바 있습니다.

수비수로써는 3번째(1970년대 프란츠 베켄바워, 1996년 마티아스 잠머 이후)였습니다.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알 아흘리를 시작으로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 알-나스르(사우디아라비아),

톈진 콴린(중국), 광저우 에버그란데, 에스테그랄(이란)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톈진 시절 리그 우승(2016)을 기록했습니다.

광저우 시절에는 리그(2019)와 슈퍼컵(2018)을 우승한 바 있습니다.

2017년 중국 슈퍼리그 올해의 코치상을 수상했습니다.

2019년 3월 15일부터 4월 28일까지 중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습니다.

광저우 에버그란데와 겸했습니다.

동생인 파올로 칸나바로 또한 축구선수였습니다.

1981년 생으로, 형처럼 수비수로 뛰었습니다.

하지만 형만큼 빛나지는 못했고, 2017년 은퇴했습니다.

이후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