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 포르투갈

21세기 유럽 축구선수-3. 포르투갈-1. 루이스 피구

안녕하세요 수돌이형아입니다.

오늘 적을 축구선수는 포르투갈의 루이스 피구입니다.

포르투갈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으로, 2002 월드컵 당시 한국에도 온 바 있습니다.

많이들 읽어 주세요.

 

1. 생애

 

1972년 11월 4일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알마다에서 태어났다.

본래 육상선수였지만 축구로 전향했다.

1984년 U.F.C 오스 파스틸라스에서 길거리 축구선수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1년 간을 이곳에서 활동했고, 12살의 나이에 스포르팅 아카데미로 이적했다.

어린 시절 풋살을 배웠는데, 훗날 커리어를 도울 여러 기술들을 배웠다.

2. 데뷔(스포르팅 시절)

 

그러던 1989년 유스팀을 보낸 스포르팅CP 소속으로 성인팀 데뷔전을 가졌다.

 

1990년 4월 1일 마리티모와의 경기에서 말론 브란당과 교체투입되어 데뷔전을 가졌다.

팀은 1:0으로 승리했다.

 

1991년 12월 7일 토렌세와의 리그 경기에서 리그 데뷔골을 기록했다.

동점골이었고, 팀은 2:1로 승리했다.

 

스포르팅 소속이었던 1991년 대표팀 데뷔전을 가졌다.이 데뷔 이전에 1991 U20 월드컵과 U16 유러피언 챔피언십을 들어올렸다.후이 코스타/주앙 핀투 등과 함께 말이다.

흔히 '포르투갈 골든 제너레이션'으로 불렸고, 피구는 핵심 멤버였다.

 

스포르팅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1994-95 시즌에는 1994-95 포르투갈 컵을 들어올렸다.

 

Sporting CP[68]

수상 기록이다.

개인상 기록이다.

 

스포르팅 CP(포르투갈) 기록: 1989-1995: 158경기 23골

 

3. FC 바르셀로나 시절

 

스포르팅 시절의 엄청난 활약으로 많은 빅클럽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던 1995년, 루이스 피구는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유벤투스,파르마 등의 세리에A 이적을 원했지만, 이중 계약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2년 간 세리에A 진출 금지라는

처벌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2250만 유로(약 300억)의 이적료로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이곳에서 루이스 피구의 기량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1996-97 UEFA컵 위너스컵을 들어올렸고, 히바우두-호나우두(초기)/파트릭 클루이베르트(후기)와의 3톱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총합 172경기 30골을 기록했다.(리그 한정)

 

이후 주급 문제 때문에 클럽에 불만을 품었고, 하필이면 라이벌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설이 돌았다.

그렇기에 바르셀로나 팬들은 루이스 피구에 대한 원망감이 생기게 되었다.

 

Barcelona[68]

수상 기록이다.

개인상 기록이다.

 

FC 바르셀로나(스페인) 기록: 1995-2000: 249경기 45골

 

4.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 당시 잡음

 

위에서 언급한 대로 2000년경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 상황에서 잡음이 발생했다.

당시 바이아웃 제도가 있었는데, 루이스 피구의 바이아웃 금액은 6000만 유로(약 800억)였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2000년 당시에는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가 그 유명한 '갈락티코 1기'를 추진하고 있는 중이었기에 금액은 문제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바르셀로나에서의 주급 문제 때문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피구였는데, 이적을 수락했다.

이 때문에 바르셀로나 서포터즈들은 엘 클라시코 때마다 피구에게 온갖 쓰레기와 욕설을 퍼부었다.

 

 

5. 레알 마드리드 시절

 

2000년 7월 6200만 유로(약 826억)의 금액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갈락티코 1기의 멤버였고, 등번호는 10번을 부여받았다.

 

2001년 14골을 기록하며 리그를 들어올렸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2001년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2001년 중반경 지네딘 지단이 레알 마드리드에 합류했고, 2001-02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다.

부상과 출장 정지 때문에 바르셀로나와의 2경기는 결장했다.

 

2002년 11월 23일 바르셀로나와의 2번째 경기는 이 라이벌 매치에 있어 딱 정의되는 경기 중 하나였다.

혐오와 부상이 직접 드러난 것은 아니었지만, 분노한 바르셀로나 팬들은 루이스 피구에게 맥주병,손전등,병,골프공 등을 던졌다.

피구는 당시 언급했다. "바르셀로나 일부 팬들이 정신이 나간 것 같다."

이 경기에서 코너킥/스로인/드리블 등으로 측면 플레이를 많이 하였다.

팬들이 던진 물건들 때문에 2분이 지체되었다.

하지만 루이스 피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웃음으로 화답했다.

주심인 루이스 메디나 칸탈레요가 20분 동안 게임을 정지할 때까지 이 던지기 행위는 계속되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5시즌을 보냈고, 2003년 라리가 타이틀을 들어올렸다.

 

2013년 4월 마르카로부터 '레알 마드리드 외국인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Real Madrid[68]

수상 기록이다.

 

개인상 기록이다.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기록: 2000-2005: 245경기 58골

 

6. 인테르 시절(은퇴까지)

 

2005년 중반경 레알 마드리드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인테르(이탈리아)로 자유계약으로 이적했다.

세리에A 2년 이적 금지가 해제되자 인테르로 이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08년 중반경 같은 포르투갈인 감독인 조세 무리뉴가 인테르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는 피구에게 고마운 일이었는데, 포르투갈 출신 동료가 같이 있기 때문이다.

 

2009년 5월 16일 인테르가 2008-09 시즌 리그를 우승했을 때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마지막 경기는 5월 31일 산 시로에서 열린 아탈란타와의 경기였다.

하비에르 사네티의 제안으로 이 경기는 루이스 피구가 주장을 달고 뛰었다.

 

Inter Milan[68]

수상 기록이다.

개인상 기록이다.

 

인테르나치오네 밀라노(이탈리아) 기록: 2005-2009: 140경기 11골

 

총 기록(-2009.5,31): 792경기 136골

7. 포르투갈 대표팀 시절&플레이 스타일

 

위에서 언급한대로 포르투갈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으로 불린다.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으로,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크로스, 강력한 중거리슛 능력을 보유했다.

또한 180cm의 키에 몸의 밸런스가 좋아 몸싸움에도 잘 밀리지 않았다.

 

성인팀 데뷔 이전 1991년 U20 월드컵을 들어올렸다.

이 때문에 이 세대를 '골든 제너레이션'으로 불렀다.

 

1991년 10월 16일 룩셈부르크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했다.(1:1 무)

 

1992년 11월 11일 불가리아와의 친선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다.(2:1 승)

 

유로 1996 지역예선에서 3골을 기록했고, 포르투갈은 12년 만의 유로 진출에 성공했다.

대회 조별리그 크로아티아 전에서 골을 기록하며(3:0 승) 포르투갈을 토너먼트에 진출시켰다.

 

1998 월드컵을 건너뛰고 유로 2000에도 출전했다.

조별리그 A조 1차전 잉글랜드 전에서 골을 기록했는데, 0: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록한 중거리슛이 골이 되었다.

팀은 3:2로 역전승을 했고, 대회 준결승까지 진출했다.

독일 전에는 결장했다.

 

2001년 8월 15일 몰도바와의 경기에서 대표팀 유일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3:0 승)

 

2002 월드컵에도 진출했는데, 지역예선에서 9경기 6골을 기록하며 팀의 진출을 도왔다.

아일랜드 전부터 주장직을 맡기 시작했다.

이 경기에서 골을 기록했다.(1:1 무)

비록 16년 만에 올라간 월드컵이었지만, 허무하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특히 공동 개최국 대한민국에 0:1로 패한 것이 뼈아팠다.

 

2004년 2월 18일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100번째 출전식을 가졌다.(1:1 무)

비록 페르난두 쿠투가 있었지만, 루이스 피구가 주장을 맡았다.페르난두 쿠투의 발탁 탈락 이후 본격적인 주장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유로 2004에도 출전했고, 팀은 결승까지 올랐지만 돌풍의 팀 그리스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이 경기 이후 루이스 피구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2005년 6월 2006 월드컵 지역예선 슬로바키아/에스토니아 전에서 복귀하였다.

 

2006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사실상 마지막 국제대회로, 조별리그 D조에 배정되었다.(당시 톱시드는 멕시코)

앙골라를 1:0, 이란을 2:0, 멕시코를 2:1로 꺾으며 3전 전승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이후 16강 네덜란드 1:0, 8강 잉글랜드(0:0 pk 4:2)까지 꺾으며 4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4강 프랑스 전에서 지단에게 통한의 pk를 허용하며 0:1로 패했다.

3/4위전에서는 독일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원맨쇼에 농락당했고, 그나마 루이스 피구는 88분 누노 고메스의 골을

절묘한 크로스로 어시스트하며 체면을 차렸다.

이 대회 이후 피구의 등번호 7번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승계되었다.

 

총 127경기 32골을 기록했다.

 

포르투갈 대표팀 기록: 1991-2006: 127경기 32골

8. WAGs

 

스웨덴 출신의 모델인 헬렌 스웨딘과 2001년 결혼했다.

1996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호아킨 코르테스 쇼에서 만났고, 결혼까지 이어졌다.

3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다니엘라(1999년생), 마르티나(2002년생), 스텔라(2004년생)이다.

 

PS.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